그 동안 해온 일을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1월 고베 시청 지진재해 이후
1월의 게스트 고베시 보건복지국 국장 사쿠라이 세이치씨
토크 1
사쿠라이씨는 지진재해 당시 고베시 홍보과장을 거쳐 다음해인 1996년부터는 생활재건본부차장 역임하였다.
지진이 일어난 날, 사쿠라이씨는 4번째로 시청에 출근했다. 모든 직원이 출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출근한 직원끼리 재해대책본부를 만들어 사쿠라이씨는 홍보과 이외의 방면에도 관여하게 되었다.
당일 사쿠라이씨는 서구(区)에 살고 있었는데, 방재 담당의 관련과장이었기 때문에 빨리 출근해야 한다고 생각해 자전거를 타고 역까지 왔지만 전철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자동차로 출근하였다. 니시고베 유료고속도로를 타고 오는데, 그 시간에는 혼잡하지 않았다. 마침 터널을 통과하기 전에 나가타 방면에서 연기가 보여서 화재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다. 소방차가 대응을 했으리라 생각했지만, 소방차의 수가 적은 것이 신경 쓰였다. 어쩌면 터널이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근처를 지나는 한 대의 차를 따라갔다. 신고베를 나와 곧 무너질 듯한 빌딩 사이를 통과해 시청에 도착했으나 시청도 무너져 내려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천장이 무너지고 사무실 안의 책상도 뒤집혀있었다.
시민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현재의 상황과 구조활동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등을 시민들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었다. 시청에서는 통상 홍보지로 시민들에게 공지사항을 전달하였으나 홍보지는 시간이 오래 걸렸고, 당시 휴대전화나 컴퓨터가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적당한 수단이 없었다. 그래서 우선 TV나 라디오를 통해 정보를 발신하였다. 홍보지를 발행하는 것은 시내에 영업을 하고 있던 인쇄소가 한 군데 있어서 먼저 그곳에서 2000부를 발행하였다. 그 후에 오사카로 거점을 옮겨서 저녁부터 밤까지 원고를 쓰고 밤중에 인쇄를 하였다. 또 오토바이 부대를 결성해서 완성된 인쇄물을 베니어 판에 붙여서 시내의 학교나 피난소에 게시했다.
매스컴 대응을 하면서 느낀 것은 피해지역과 그 외의 지역 사이에, 실감하는 정도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외부에서 온 취재진들 중에는 실태를 직접 보지도 않고 질문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예를 들면 주민들에게 실황을 알리기 위해서 소방서의 홍보차를 이용하지 않는가라고 물어본 취재진이 있었는데, 그것은 당시의 도로 사정을 본 적이있다면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당시에는 집으로 돌아가도 다시 출근할 교통 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시청 복도에서 잠을 청하였고 10일 정도는 제대로 잘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다음 해, 생활재건본부로 이동하였는데, 주된 업무는 시내에 세워진 3만가구정도의 가설주택 관리였다. 가장 신경이 쓰인 부분은 화재였다. 가설 주택은 화재를 대비한 구조가 아니어서 한 가구에 불이 나면 전체에 퍼졌기 때문에, 소화기를 두 가구에 하나씩 두거나, 주민들이 야간 순찰을 돌도록 하였다. 시간이 지나 가설주택 거주자가 줄어들면서 위험도가 높아졌기 때문에 더욱더 신경을 썼다. 한번은 화재와 관련해서 밤중에 4번 전화가 걸려온 적이 있었는데, 지금도 밤에 전화벨이 울리면 그 때를 떠올리게 된다.
또 한가지 업무는 생활재건을 위한 지원금을 모으는 일이었다. 당시는 지금과 달리 고령자를 위한 급부금, 중년층을 위한 급부금과 같은 형식으로 제도를 설계해나갔는데, 개인 보상과 겹쳐진 부분도 있어 정부를 설득하는 것이 어려웠다.
당시 정부제도에서는 구면정리나 재개발에 대한 보조를 가장 간단하게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 돈 없이 복구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제도를 적용하는데 있어서 단계적 추진하는 도중에 정보가 새서 곤란했던 일도 있었다.
당시를 회상해 보면 ‘잘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가 하면 ‘아쉽다’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평가라는 것은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어느 쪽이든 14년이라는 세월을흘러 재해에 대한 기억이 잊혀져 가는 지금, 그 동안 해온 일을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토크 2
<행복을 전달할 수 있도록>이라는 노래를 들으면 지금도 눈물이 날 것 같다. 지진 재해가 있고 그 다음해(1996년) 1월 시홍보지 1면이 이 노래의 가사였다. 이 노래는 방재학습부교재인 <행복을 전달하자>가 만들어져 그 안에 실려있던 것이다. 시민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는 노래라고 생각한다.
지진재해 이후 시에서는 얼마나 재해를 줄일 것인가에 대해 궁리하게 되었다. 방재는 행정만으로 이루어진다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재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시민 한 사람 한 사람부터 행정까지 누구라도 생각해서 추진할 수 있다.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하나씩 축적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피난소에 있던 아이들에 관한 기억이 있다. 화장실의 물이 내려가지 않아서, 어른들 사이에서 누가 청소를 할 것인가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한편 아이들은 피난소 신문을 만들어서 ‘화장실 청소는 이렇게 하자’라는 기사를 썼다. 아이들이 관여함으로써 어른들이 변하는 것을 보고 아이들의 힘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아이들이라도 일상에서부터 가사를 돕거나 한다면, 무슨 일이 생겼을 때에도 자신의 역할을 다할 수 있다.
고베에는 <나눠주기 문화>가 있어 무척 재미있는 지역이라고 생각한다. 이 문화를 살려서 서로 얼굴을 마주보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행정은 큰 정보를 전달하는 것밖에 할 수 없다. 하지만 시민이 원하는 정보는 좀 더 소소한 것으로, 예를 들면 어느 가게가 열려있는지 어느 목욕탕을 사용할 수 있는지와 같은 것이다. 지역의 정보를 알고 있는 방송국에서 발신하면 구석구석 전달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 역할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근처에 있는FM방송국을 지역의 재산이라고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재해 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해 피난설계를 정비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지역의 힘이 필요하다. 시에서도 지역의 힘을 향상시키기 위한 정책이 있기 때문에 함께 추진해 나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