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 대지진 때의 피난소•가설주택 코디네이터 경험을 살려

도시 플래너 이시토우 나오코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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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베의 나가타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도시 플래너로서, 신도시 개발, 재개발, 노인의 주거와 생활 등 시대의 변화와 함께 다양한 일에 손대고 있었습니다.
한신•아와지 대지진 때는, 오사카에 살았습니다. 고베에 어머니가 살고 있었으므로, 곧바로 고베로 달려가려 했습니다만, 니시노미야 기타구치 역까지 밖에 갈 수 없었습니다.

 

■니시노미야 시청에서
지진 일주일 뒤, 가설 주택 응모 용지 배포를 돕게 되었습니다. 용지를 받으러 오시는 분들 중에는, 아주 고령이신 분들이나 독거노인이 많았습니다. “가설주택에 추첨돼도 동네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 혼자서 살기 힘들어”라던 분의 말씀이 뇌리에 새겨졌습니다.

 

■원기넘치는 사나이가 만드는 건물
고도경제성장기*에는 약자의 관점이나 삶에 대한 관점이 없습니다. 당시의 작업장은 ‘남성사회’였으므로, 부인에게 집안일을 떠맡긴 원기넘치는 남자가 원기넘치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이건 불편할 거라고 생각해”라고 내가 여자의 관점을 말하면 “주부의 관점은 프로의 관점과 다르다”며 바보취급을 받기 일쑤였습니다.

*(고도경제성장기: 한국전쟁 직후인 50년대 후반부터 오일쇼크가 시작된 70년대 후반까지의 20여년 간)

 

■옆에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인근 환경이 있었기 때문에・・・
바로 옆집에 수십 년간 알고 지내온 이웃들이 있고, 점심무렵까지 창문을 열지 않으면, “무슨 일 있나?”라고 창문을 열어주는 사람이 있고, 장보러가면 그 가게 주인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환경이었기에 노인이라도 혼자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꾸밈없는 인간 관계, 친절함, 보살펴 주고 신경 써주는 배려가 있었기에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늘어나는 고독사
가설주택에 익숙해져, 겨우 옆집과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는데, 부흥공영주택으로 이사가게 되면 또 홀로서기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게 됩니다. 가설주택 공급 후, 겨우 4 년 반 정도에, 약 250명이 고독사했습니다. 또한 공영주택은 철문 하나 닫았을 뿐인데, 외부와 완전히 차단, 고립돼버리는 상황이 됩니다.

 

■직접 교류하며 살 수 있는 주택
지진이 난 해 가을, ‘컬렉티브 하우징 사업추진 응원단’이라는 자원봉사 조직을 설립했습니다. 컬렉티브 하우징에서는 자기 집의 면적 10 %를 각자 내어놓아, 공동거실과 조금 넓은 주방을 만듭니다.

 

 

■생활지원대
3 월11일 지진이 나자, ‘지금 당장이라도 날아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주변에서 말렸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2004년 수술을 받아, 체력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현장에 가고 싶었습니다만, 갈 수 없어 분했습니다.
지진이 난 며칠 후, 피해지역에서 우리 간사이 지방까지 피난 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고베에서 활동가능한 ‘생활지원부대’를 꾸렸습니다. 피난해 오는 분들의 ‘비탄케어’*를 오랜 시간에 걸쳐, 계속 해나가자고 생각했습니다.
5 월의 연휴 기간에는 피해지역으로 떠나는 동료에게 ‘생활지원부대’의 팜플렛을 쥐어주었습니다.

*(슬픔치유: grief care. 배우자나 어린이, 부모, 친구 등 소중한 이가 세상을 떠, 큰 비탄에 잠긴 이를 서포트 하는 일.)

 

■가설주택의 지원을 가르쳐 주길 바래
팜플렛을 본 생활습관개선센터 이사장으로부터 뜻밖에 전화가 왔습니다.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이야기를 들려주러 오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문화의 차이
동북지역의 문화는 간사이의 문화와 전혀 다릅니다. 내 이야기는 간사이지역의 이야기입니다. 동북지역의 문화를 소중히하면서 지원하고자 마음을 쓰고 있습니다. 재해지에서 이야기를 할 때, 먼저 “나는 간사이의 문화 밖에 모릅니다. 여러분에게 맞는 것만을 골라 들어주세요”라고 전합니다.

 

■동북 대피소 생활, 가설주택
한신•아와지 대지진에서 교훈을 얻은 덕에, 많은 가설주택이 지금까지의 지역공동체를 무너뜨리지 않고, 마을 단위, 지역공동체 단위로 입주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또한, 한계집락*의 경우, 가설주택에 노인들만 살게 되면 곤란하므로, 약자의 비율을 전체의 30%를 초과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입주시키는 지역도 있었습니다.

*(한계집락: 인구의 50퍼센트 이상이 65세 이상의 고령자로 관혼상제 등 사회적 공동생활을 유지하기 곤란한 마을.)

 

■젊은 세대를 키우는 것도 내 사명
한신•아와지 대지진 때는 50대 ~ 70대 정도의 분들이 많이 활약해, 젊은 층을 별로 키우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의 반성을 되살려, ‘생활지원부대’에는 30대나 대학생도 멤버로 넣었습니다. 젊은 세대를 키워 나가는 것도 제 임무, 함께 피해 지역에도 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