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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움이 된 할머니의 가르침

    (주)도우코우상회 대표이사 시미즈 토시타쓰 씨

     

    ■유리 건물의 건축 관련 업무

    고베 코난 라이온스 클럽의 일원으로 약 20년 가까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옛날에 아버지가 유리 퍼티*라고 유리의 가장자리를 고정시키는 물건을 만드셨더랬습니다. 지금은 그것을 힌트삼아, 실링공사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실링이란 고무로 만든, 유리를 고정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유리에 붙이는 쿠션재를 만들어 유리 건물 건축 등에 손대고 있습니다. 고베시청의 건축에도 관여했었는데, 쿠션재 덕분에 대지진에도 유리는 깨지지 않습니다.
    *(유리 퍼티: 창문에 유리를 고정시킬 때 사용하는 도료의 일종. glazing putty)

     

    ■한신•아와지 대지진 때

    고베시 히가시나다에 있던 집도 회사도 무사했습니다. 부흥 일은 바쁘고, 너무도 신경 쓰이는 일이었습니다. 회사도, 지진 1년 전에 새로 지은 집도 다행히 무사했습니다.

     

    ■기묘한 경험

    전기사용량을 정확히 계산해 신축한 집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지진 이틀 전 퓨즈가 나가버려, 아내가 손전등을 사왔었습니다. 그 손전등이 이내 지진이 나자 도움이 되었다는 기묘한 경험을 했습니다.

     

    ■할머니의 교훈

    할머니는 유사시를 대비해 언제라도 현금이 수중에 있도록, 베개에 100 만엔을 넣어 두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이어받아, 나도 침실에 현금을 마련해두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지진 다음날, 직원과 함께 오사카에 오토바이 40대를 사러 갈 수 있었습니다. 현금이 수중에 있던 덕분에 빨리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도우신 것일지도 모릅니다. 걱정과 달리 많은 기술자들이 회사로 몰려와 줘, 일손도 딸리지 않았습니다.

     

     

     

    일본어를 모르는 외국인의 불안

    FM와이와이 DJ•라틴 커뮤니티 대표 오시로 록산나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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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디오 프로그램 “Salsa Latina”

    FM와이와이에서, 수요일 저녁에 방송하고 있습니다. 고베시 나가타 지역에 사는 라틴계 사람들이 일본에서 보다 살기 편하도록, 일본어 및 스페인어로 생활정보를 전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문화와 관습을 전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합니다.

    ■일본어를 거의 모르던 당시 대지진을 경험

    페루의 일본계 3세로, 할아버지가 오키나와 출신입니다. 일본에 온 것은 1991년입니다. 지진 때는 일본어를 거의 말하지 못하는 수준이었습니다.
    남편과 고베시 스마에 살고 있었습니다. 효고현에 살고 있던 사촌도 연휴라 놀러온 상태에서,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페루에도 큰 지진이 있지만, 저는 겪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난생 처음 겪는 대지진이라 놀랐습니다. 남편도 페루 출신으로 일본어를 거의 알지 못해, 패닉이었습니다.

     

    ■”쓰나미”라고 들어도,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몰라

    바다와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으므로, “쓰나미”라는 말이 귀에 들어왔습니다. 그렇지만 “쓰나미가 온다”는 것인지 “오지 않는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사람의 물결에 밀리다시피해서 겨우 광장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동이 터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상해 매우 불안했습니다. 지진으로 발생한 화재의 연기가 하늘을 덮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광장에서 만난 할머니

    추워 보이는 할머니가 남편의 눈에 띄자, 고향의 어머니가 떠올라 그냥 둘 수 없었나 봅니다. 남편은 집으로 돌아가 스웨터를 챙겨와, 할머니께 그 스웨터를 드렸습니다.
    이번에는 할머니가 손을 꼬옥 잡고서는, 대피소였던 중학교까지 데려가 주셨습니다. 페루에서는 재해가 나도 특정한 곳에 모이는 시스템 자체가 아예 없기 때문에 몰랐습니다.
    지진이 난 해 6월, 이사하게 된 아파트로, 그 할머니가 스웨터를 돌려주러 찾아와주셨습니다. 그때는 일본어를 몰랐기 때문에, 주소 등을 물어볼 수가 없었습니다. 세번 밖에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후로, 할머니가 잘 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라틴사람이 일본에서 더 살기 편하도록

    지진 당시는 일본어를 할 수 없어 “언어의 장벽”으로 고생했습니다. 앞으로도 일본에서 생활하는 이상, 일본어를 배우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그 지진 당시, 일본어를 알고 있었다면, 좀더 달랐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다양한 정보를 라디오나 잡지를 통해 발신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