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있는 친척보다 이웃사촌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가능한 일

피난소 운영에는 여성의 관점 잊지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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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O 법인 우먼즈네트・피난소 운영에는 여성의 관점 잊지말기를
 

 

■우먼즈 네트・고베
남녀평등이나 여성의 인권을 지키는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진나기 한해 전, 집 한채를 세내, “여자들의 집”이라고 해서, 여성들끼리 속터넣고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지진으로 인해 그 집은 잃었지만, 단칸방 하나를 빌려, 여성을 위한 전화상담, 젖먹이나 어린 아이가 딸린 엄마나 아이를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피난소에서 새우잠을 자며
옷 갈아입을 장소가 없거나 아이가 밤에 우는 것 때문에 가슴태우던 여성들은, 피난소에 있기 힘들어 하며, 반쯤 무너진 자택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남성들의 눈이 신경 쓰여, 화장실 가는 것을 참기 위해, 수분 섭취를 억제한 나머지, 건강을 해친 여성도 많은 듯 했습니다.

 

■가뜩이나 힘든데, 가정에서는 실랑이까지 ・・・
집 대출금이 아직 남아 있는 상태에서 집은 무너지고, 거래처도 망해, 남편이 매일 밤 아이에게 폭력을 휘두른다는 상담도있었습니다. “모두 지진 피해로 힘든 때인데, 집안의 하찮은 실랑이 따위를 상담하고자 하는 저는 너무 저만 아는 건가요?”라고 모두 말합니다.
 

 

■동일본의 피해 지역
여군이나 여경이 전국으로부터 파견되어 있었습니다. 여성 지원단체도 예방 카드를 배부하고, 벽보를 붙이고 있었습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나 성피해 대책도 진행되었습니다.

 

■거기 밖에 살 곳이 없는, 그래서 참고 지낼 수밖에 없는
성적 피해를 입었다는 이야기를 하자 “그때 즉시 경찰에 가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거기 밖에 살 곳이 없는 때에, 누구에게 그걸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라던 답변이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앞으로, 또 재해가 나면,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도록 전해 나가지 않으면 안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여성의 관점을 피난처 운영에
여성들을, 피난처 운영에 별로 관여시키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지도자의 책임을 남녀에게 각각 반반 씩 맡긴 피난소에서는, 운영이 잘 되어, 표정또한 밝았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와테현의 부흥회의
18명의 회원의 1차 회의 때는 모두 남성이었습니다. 이와테현 어협의 여성부에는 8300명이 소속해, 여성 대부분이 생선 가공공장에서 근무했습니다. 가공공장이 쓰나미 피해로 휩쓸려 나갔기 때문에, 일이 없어져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불안한 분들도 많습니다. 그런 점도 반영되는 부흥회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일본 대지진 여성 네트워크
활동으로 얻은 것을 정리해, 국가에 제언을 하기도 합니다. 부흥의 일이 잔해처리 등 육체노동이 많기 때문에, 여성 고용상실도 고려해줬으면 하는 것, 부흥회의에는 여성을 30 % 이상 넣어 달라는 것 등입니다.

 

■안심하고 살 집을
재해 때에는 여성과 아이들은, 화풀이 대상이나 스트레스의 배출구가 돼버리기 쉽습니다. 이미 가설주택에서는, DV에 의한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곤란한 때에 SOS를 확실히 보낼 수 있고, 그 사람이 안심하고 살 집을 제공할 수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핸드 맛사지대를 결성
보건사, 조산사와 함께 피해 지역에 들어갔습니다. 낯선 우리에게는 좀처럼 이야기를 하려하지 않아, 핸드맛사지대를 결성했습니다. 매우 호평을 받아, 많은 분들이 모여주셨습니다. 한사람 앞에 10분 남짓입니다만, 여러가지 이야기를했습니다. 마음을 열어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40년 정도 계속 생선을 가공했다는 여성, 남편과 함께 배를 타고 그물로 고기를 잡았다는 여성도 있었습니다. 해안 여성들은 매우 생활력이 강했습니다. “무엇이 필요하세요?”라고 묻자, 일이나 차량이라고 대답한 분이 여럿 계셨습니다. 그것을 듣고 친구가, 폐차하는 차량을 마련해 공유용 자동차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잊지말길 바래
자원봉사자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죄송합니다”라고 내가 말하자, “고베 지진때는 멀어서 갈 수 없었다. 그렇지만, 당신들은 이렇게 와줘서 용기를 얻었다”라고 말해 주셨습니다. 가끔 “어떻게 지내요?”라고 전화를 걸어주는 것, 잊어버리지 않아주면 기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