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민 지원에서 노숙인 지원으로

고베시 직원 하시모토 가오루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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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아와지 대지진 때

고베시 니시구청에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가옥의 피해 조사, 대피소의 당번, 가설주택 돌아보기 등, 여러가지 일을 했습니다. 작년까지 고베시 나다구의 복지사무소에 근무, 생활보호 업무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담당하고 있던 분들이 매우 걱정됐습니다. 공무 중 틈을 타서, 자전거로 나다까지 둘러 보러갔습니다. 복지사무소에는 거의 아무도 없었고, 빈소 (오우지 스포츠 센터)에 갔습니다. 예전에 제가 담당하던 다섯 분의 이름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심야에 찾아온 한 여성

아버지가 안치되어 있다고 듣고 온 여성이었습니다. 시신은 매우 손상되어 있었습니다.떨어져 살고 있었던 듯, 시신은 이튿날 아침에는 친척이 있는 시골로 돌아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마지막 작별이라고 생각하며 달려 오셨다고 합니다. 몇년 만의 상봉이 이런 형태라서 괴로웠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있어주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향을 조금 가지고 오셨던데, 향을 세울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근처에 계신 분들이 “여기다 찔러요”라며 귤을 가져다 주어, 그 여성은 아버지께 조문을 했습니다. 함께 조문해주어 기뻤다면서 눈물을 흘리며 돌아가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함께 있어주는 것이 지원이 된다는 하나의 경험이 되었습니다.

 

 

■‘관공서 일’의 답답함

다른 도시의 장례식장을 빌리게 되어 “반드시 매장허가가 있을 것”이라는 조건 아래, 다음날 아침까지 30구를 고르지 않으면 안되게 됐습니다. 유족에게 물어 물어, 부인을 잃은 고령의 남성과 만났습니다. 매장허가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고베대학까지 가서 시체검안서를 받아, 나다구청에 신청을 해야만 했습니다.
“매장허가가 없는 이를 리스트에 넣을 수 없다”고 동료와 싸움이 붙었습니다. 한 직원이 오토바이로 다녀와 준 덕에, 밤이 새기 전까지 어떻게든 맞출 수 있었습니다.
돌아가신 분을 앞에 두고, 제대로 일을 하려했습니다만, 그렇지만도 않았습니다. (행정편의주의와) 타협하지 않고, 부당한 것은 부당하다고 말해나가리라 결심하고, 유족 앞에서 “뭐든지 말씀해주세요, 무엇이든 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유족의 말씀에는 근거나 배경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무조건 “안됩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베의 겨울을 지원하는 모임’에서 활동

지진 직후 노숙자 분들은 지진의 피해자로 인정되지 않아, 지원대상에서 배제되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해서, 95년 가을부터 겨울에 걸쳐 생긴 단체입니다.
외국인 지원 그룹 회의에 참석했을 때, “노숙자지원 및 생활보호, 복지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는지?”라고 물어와서, 저도 지원활동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노숙자로 타고난 이는 없다

모두 태어난 고향이 있고, 추억이 있고, 꿈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나름대로 사정이 있어 집을 잃고, 공원이나 역 주변에서 잠을 청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좋아서 그런 삶을 택한 것이 아닙니다. 오해받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노숙자의 변화

2000년 전후는 500끼 이상을 마련한 적도 있지만, 올해 무료배식은 200~250끼를 준비했습니다. 공원에서 자는 사람은 줄고 있지만 기뻐할 수 없습니다. ‘인터넷카페 난민’이라는 말도 있듯, 안정된 집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형태가 바뀌어 보이기 힘들어져 있을 뿐입니다.
 

■젊은이의 노숙자 습격사건

사회가 소년들에게 “노숙자는 쓸모없는 사람이다”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진 때도 구호물자를 받지 못하거나 “대피소에서 나가라”는 말을 듣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유는 달라도 집을 잃은 것은 마찬가지인데 말입니다. 지원책에서 배제되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느껴, 노숙자 지원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노숙자 중 많은 분들은, 지금까지 사회를 지탱해오신 분들이지만, 불황으로 수입이 없어져 그런 불행을 겪고 있다는 것에까지 생각이 못 미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교훈과 반성을 마음 한켠에・・・

동일본 대지진에 대해서도 할 일이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신•아와지 대지진 때의 교훈과 반성을 마음 한켠에 놓아둬 주신다면 기쁘겠습니다.